종로호빠 역사시간 인사동
오늘은 인사동 역사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인사동은 한국인의 삶과 역사와 문화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조선왕조(1392~1910)때부터 근 600년 동안 서울의 심장부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조선시대 최고 예술 관청이였던 도서화가 위치해 있어
일찍이 예술로 명성을 떨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으며,
당대 유명한 화가들이 이곳에서 예술 작업을 펼칠 수 있었다.
인사동이라는 명칭의 유래를 살펴보면 이 지역은 관인방, 견평방, 대사동계, 탑동계
등의 방, 계명이였었는데 1914년에 동으로 명칭을 개청하면서 관인방의 인자와
대사동의 사자를 조합해서 인사동이라는 이름이 만들어졌다.
조선시대의 인사동
서울은 조선시대에 한양이라고 불리었으며, 1394~1910년까지 조선의 수도였다.
현재의 서울은 한강에 의해서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조선시대에는
한강의 남쪽은 서울이 아니였다.
서울은 청계천이라는 작은 강에 의해 남과 북으로 나뉘어졌으며 청계천의
남쪽은 남촌, 북쪽은 북촌이라고 불리어졌다.
풍수지리상에 의하면 뒤에는 산이 있고 앞에는 강이 흐르고 있는 곳이
명당으로 알려져, 북한산과 청계천 사이에 경북궁과 창덕궁이 만들어졌다.
인사동은 경북궁과 창덕궁 사이의 개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인데,
예부터 충훈부, 의금부, 우정국 등 정부 부속기관들이 위치해 있었기 때문에
관리, 학자 등 역사적으로 유명한 인물들이 인사동에 많이 살았다.
근대
1910년부터 일제강점기가 시작되어 양반들이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게 되자
상류층이 이었던 북촌에 거주하던 양반 계층이 붕괴되었다.
이를 계기로 점차 상점화 하기 시작한 점포들 중에는 일본인들에 의해 경영되던
골동품상이 있었으며 이곳에 의해 몰락하기 시작한 양반들 소유의 도자기,
고서화 및 고가구 같은 골동품들이 인사동에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1930년대, 인사동이 골동품의 거리로 유명해지는 계기가 되었으며,
경북궁 자리에 조선총독부가 만들어진 후 조선총독부와 가까이 위치한 인사동에서
일본인들이 한국의 고미술품들을 수집해가는 슬픈 역사도 함께 가지게 되었다.
또한 서울의 중심지인 인사동에는 역사적 명소가 많으며 특히 3.1운동의 대표적
본거지로 독립운동의 발원지로서 그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3.1운동 유적지인 태화관과 탑골공원, 승동교회, 천도교 중앙대교장, 조선건국동맹터,
독립선언문 배부터 등 많은 유적지들이 산재해 있다.
출처: 문화지구 인사동 (http://www.hiins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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