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의 역사 – 웅지 품은 산하

종로호빠 G2 역사 시간

큰산.큰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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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명당도

아득한 옛날, 종로엔 아무것도 없었다. 종로라는 이름조차도 없었다.
그저 큰 산을 두르고, 큰 강을 앞에 둔 “고요의 분지”일 뿐이었다.

큰 산은 멀리서 분지를 둘렀다.
훗날 사람들이 용마(龍馬山), 관악(冠岳山), 덕양(德陽山), 북한산(北漢山)이라 불렀다.
이른바 외사산(外四山)이다.
또한 이 산들의 호위를 받듯 고요의 분지를 안에서 감싸며 포진한 산들이 있었다.
훗날 사람들이 백악(白岳 · 北岳山), 낙산(駱山), 인왕(仁王山), 남산(南山 ·木覓山)이라 불렀다.
이른바 내사산(內四山)이다.

산은 계곡마다 물 머금고 물은 낮은 곳으로 흘렀다.
지극한 자연의 이치였으니, 개울이 생기고 물길이 열렸다.
물길은 다시 물길로 만나 큰 물 · 작은 물 강을 이루었다.

큰 물은 큰 강, 작은 물은 개천(開川)이 되었으니 한강(漢江 · 아리수)과 청계천(淸溪川)이 그 이름을 얻었다.
이른바 고요의 분지를 둘러 흐른 외룡(外龍=한강)과 내룡(內龍=청계천)이다.
산이 강을 낳고, 강은 산을 안았음이 이로써 뚜렷했다.

고요의 분지는 이렇듯 완벽하리 만큼 산과 강을 갖추었다.
지리적으로 이미 범상찮은 기운을 품고 있었다.
하여 훗날 산마다 이름이 붙고 강마다 명성이 났을 때 고요의 분지에 대해 사람들은 이렇게 논했다.

“삼각산(三角山, 일명 北漢山)은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한 선경(仙境)이다. 그곳에서 시작한 산맥이 3중 · 4중으로 서로 등져 명당을 수호하고 있으니, 삼각산에 의지해 도읍을 세우면 9년만에 사해(四海)가 와서 조공할 것이다”
(김위제, 남경설치론-고려숙종/ 三角山 明堂記 참조)

이는 풍수지리설에 입각한 명당론이다.
일찍부터 사람들이 ‘분지’에 서린 땅기운을 알아보았음을 의미한다.
고요의 분지는 이렇듯 일찌감치 도읍터로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 나라의 수도로서 1000년 이상(한성백제 도읍 / BC 18-AD 474년, 근세조선 한양 도읍/ 1396-1910년) 나라를 이끌어 온 오늘 날 서울 땅이 아득한 옛날부터 ‘대지의 웅지’를 품었음을 표현한 것이었다.

풍수 명당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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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

일반적으로 바깥쪽 주산(主山)을 뒤에 두른 안쪽 주산이 좌청룡, 우백호를 거느리고, 안산(案山)을 마주하며 물줄기와 어울리는 곳을 풍수에선 명당으로 친다.

오늘날 서울 · 수도권의 시발점이 되는 종로구 경복궁 지역 일대는 이 같은 명당의 기본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경복궁 뒤쪽에 우뚝 솟은 주산인 백악(白岳)은 한양의 종산(宗山)인 삼각산을 외주산(外主山)으로 두른 채 좌청룡(左靑龍) 낙산과 우백호(右白虎) 인왕산을 거느렸다.
앞쪽엔 목멱산으로 불린 남산이 안산으로서 마주보고 있다.
이에 더해 멀리 동에서 서로 흐르는 한강이 외룡으로서 둘러 주는데, 이를 바라보며 백악과 인왕산에서 발원한 청계천이 서출동류(西出東流)해 내룡을 이루었다.
이들 내룡과 외룡은 서로 반대쪽에서 마주보며 흘러오다 중랑천에서 만나 하나를 이룬다.

한반도의 대부분 강과 개천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거나, 북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는데 청계천처럼 서쪽에서 나와 동쪽으로 흐르며 큰 강과 어우러지는 형국은 드물다는 것이다.
이는 바로 서울분지를 천하의 명당으로 만들어 주는 조건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외룡인 한강 너머엔 관악산이 바깥 안산(外案山)으로 종산인 삼각산과 어울려 웅장한 산세를 형성해 둘렀다.
이로써 오늘 날의 서울 땅은 그 옛적부터 한 나라의 도읍터가 될 수 밖에 없는 풍수적 조건을 갖추었다는 해설이다.

선사인류

큰 산과 큰 물로 둘러싸인 ‘고요의 분지’는 자연 사람들을 끌어 들였다.
이른바 ‘선사인류’들이 모여 든 것이다.

수렵생활을 주로 했던 선사인들에게 ‘고요의 분지’는 살아가기에 좋은 조건이었다.
큰 산 기슭따라 펼쳐진 높고 낮은 산과 구릉과 평지, 그곳에 흐르는 크고 작은 강과 개천엔 먹을 거리가 풍부했다.
강과 개천 주변엔 늪지대도 풍부했다.
건강한 생태와 자연환경이 생명을 찬미하는 듯 했다.
그런 곳에 산을 등지고 강과 개천을 끼고 사람들이 삶을 꾸리기 안성맞춤이었다.

고요의 분지가 이른 시기에 선사인들을 만날 수 밖에 없는 필연의 조건이었다.
언제 어디서부터 인류가 이 분지에 몰려 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오늘날 발굴된 선사유적으로 짐작해 볼 뿐이다.

오늘날 서울지역엔 강동구 암사동 선사주거지와 성동구 응봉유적, 송파구 가락동 유적지 등이 발견되고 있다.
구석기 · 신석기 시대의 선사인들이 살았던 흔적이다.
주로 강변 평지와 구릉 지대와의 접촉지점을 따라 유적이 발견됐다.
이밖에 경기도 고양시, 파주시, 광명시 등에서도 유적이 발견됐다.
이들 유적들은 한강변 유역을 중심으로 아득한 옛날부터 사람들이 살았음을 보여주는 흔적들이다.

이로 보아 종로구 지역에서도 청계천 북쪽 사면일대를 중심으로 가회동, 계동, 혜화동 등에서 선사인들이 살았을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북악과 인왕산에서 흘러 내려온 맑은 청계천을 바라보며 남향지세를 이룬 청계천 북쪽 사면의 주거공간을 선사시대 주민들이 놓쳤을 리가 없다는 추정이다.  

이처럼 종로구 지역의 선사문화도 한강변을 따라 형성되어온 이른바 ‘한강 유역 선사문화권’의 연장선상에서 그 존재를 상정해 볼 수 있다고 하겠다.

종로호빠 G2 역사 시간 끝
다음 시간에도 종로호빠 G2 역사 시간이 이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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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 역사

안녕하세요. 종로호빠 No.1 G2 입니다.

종로구에 종사하며 종로구를 더 알아가고자 종로의 역사에 대해
공부해보는 시간을 한번 갖도록 하겠습니다.

종로구(鐘路區) 변천사

종로구는 조선의 건국이후 한양천도와 함께 오늘날까지 약 600여년 동안
서울의 중심부로 25개 구청 가운데 행정서열 1위인 문화, 행정의 심장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오고 있다.
종로라는 명칭은 지금의 종로1가에 도성문(都成門)의 개폐(開閉)시각을 알려주는
큰 종을 매달았던 종루(鐘樓)에서부터 비롯되었으며 1943년 4월 1일 區制度를
실시할때 鐘樓가 있는 거리라는 뜻으로 종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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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구(鐘路區) 행정구역은

우리구는 서울의 중심구로 국가주요 공공기관이 있어 정치, 경제, 문화의 중추적인 도심지역이며, 세종로 네거리 동북에 도로원표가 있고, 전국이정표가 이 도로원표를 기점으로 하고 있어 종로가 우리 국토의 중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1394년 10월에 조선왕조가 한양에 천도한 이후 600여년 동안 우리민족과 함께 영고성쇠를 말없이 지켜온 북악산, 인왕산이 있고,경복궁,창덕궁,창경궁,종묘,사직단,동대문 등 수없이 많은 문화유산과 우리 고유의 전통한옥이 잘 보존되어 전통미와 현대미가 조화를 이루며 공존하고 있는 자랑스럽고 살기 좋은 곳입니다.

총면적이 23.91km²이며, 주간활동인구 200만명 내외, 호적인구 140만명 내외, 상주인구 17만명으로 산업화, 도시화에 따라 도시기능을 개선하기 위하여 꾸준히 도시를 재정비하여 살기좋고 쾌적한 환경을 갖춘 국제 문화도시로 발전, 성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종로구 역사에 대해 마치겠습니다.
다음 번에도 종로구에 대해 더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종로호빠와 함께하는 다음 역사시간도 기대해 주세요~

역사 외에도 종로에 관련된 여행, 맛집, 명소 등
좋은 정보 많이 많이 알려드리도록 할게요
기대해 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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